
영혼불멸설
영혼
작성자
캠프장
작성일
2022-12-01 12:07
조회
547
영혼불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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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세상의 많은 종교는 '영혼불멸설'(靈魂不滅說, immortality of the soul)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육신과 영혼은 별개이며,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천당이나 지옥에 가거나 다시 인간, 동물 등으로 환생한다는 사상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야훼(여호와)가 불멸하는 영을 인간에게 불어넣었다고 하며, 도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일컬어 신선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업식이라 일컬을 수 있으며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이 업식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으로 육도윤회한다고 합니다. 서양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영혼불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을 인간생활의 원칙으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자체가 삼부(三部)구조로 되어 있어서 감각적인 욕정의 원리인 탐욕혼이 복부에 자리 잡고 있고, 용기와 정기의 원리인 기혼(氣魂)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각의 원리인 지혼(知魂)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지혼은 불멸의 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자연철학적인 원리인 질료형상론(質料形相論, Hylemorphism)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사물의 구조원리가 그렇듯이 모든 생물의 구성원리는 원질(原質) 혹은 질료와 체형(體形) 혹은 형상으로 되어있어서, 여기의 모든 생명체의 체형 또는 형상이 혼 입니다. 따라서 식물에게는 생혼(生魂)이 있고, 동물에게는 각혼(覺魂)이 있으며 이 각혼은 생혼의 기능을 동시에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지혼(知魂)이 있는데, 지혼은 생혼, 각혼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기독교에서 영혼은 인간의 육신은 마치 사람이 육체에 옷을 입는 것 같이 영혼에게 입혀진 것이 옷이 육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는 불멸이며, 모든 인간의 영혼은 죽은후 야훼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여부에 따라서 대해서 심판을 받고 천국 혹은 지옥으로 나뉘어 가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육체는 영혼이 존재하는 동안 거하는 임시거처일 뿐이며, 인간의 모든 지식과 기억을 포함한 자아는 영혼에 존재하기 때문에 육신보다 영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각 개인의 사후세계를 위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 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나 사후세계만을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육체와 영혼으로 된 사람을 창조하셨다.” “영혼은 죽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이부(二部)구조적인 인간관은 창세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론에 근거를 두는 것이지만 이 교리가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반면, 동양의 유교에서는 천지만물이 음양, 오행, 기의 집합으로 생겨나고, 또한 그 기의 흩어짐으로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의 모임으로 태어났다가 그 기의 흩어지는 현상이 바로 죽음이라고 해석했죠. 그래서,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혼백(魂魄) 역시 음양의 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일이 지나면 마침내 흩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기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유교에서는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번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손을 통해 대를 이어감으로써 그 허무함을 달래고 영생의 욕구를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즉, 후손으로 이어지는 것이 영혼이 이어지는 것이며, 대가 끊어지는 것을 영생이 단절된다고 생각했습다. 그래서 후손을 대단히 중요시 여긴 것 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연기설에 따라, 내세관이 뚜렷하였으며, 영혼을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합니다.
죽음은 곧 다른 삶의 시작으로 종말이 아니며 전생의 업보에 따라 금생(今生)에 태어나서 다시 업을 짓고 죽으면 그 업과(業果)에 따라 내세가 열리지만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어서, 자신의 지은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이 저장된 업식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천상으로 윤회한다고 하는 연기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업을 닦고 내세를 예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 본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윤회의 고리를 끊은 해탈을 하여야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대승불교적 관점으로 불교의 기본교리는 영혼을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입니다.
무아설은 아트만을 불변의 실체로 인정하는 기존의 인도 사상과는 구별되는 불교 고유의 주장으로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아(我)는 부정하면서도 아트만의 상주설(常住說)과 함께 인도 사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윤회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시각에서 윤회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我)〕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범부의 그릇된 인식으로서 존재하는 나〔我)〕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아윤회(無我輪廻)’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대신 참 나 또는 무아라는 개념으로 업보에 따른 윤회를 설명합니다.
도교는 현세에 중심을 둔 종교로써 내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너무 허무한 것이기에 죽지 않는 장생불사(長生不死) 와 신선이 되는 성선(城仙)의 길을 택했습니다. 도교의 대표적인 서적인 ‘포박자’를 쓴 진나라의 갈홍은 거북과 학은 오래도록 산다고 하면서 어찌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겠냐고 갈파합니다.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초기에는 불로초나 불사약 같은 것을 추구했지만 후에는 방향을 바꾸어 정신적 수양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도교에서는 죽음에 대한 해석을 신체는 관에 들어가지만 영혼은 신선세계에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시해(尸解)입니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그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있다고 하는 원죄설을 주장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죄란 현세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에 의하여 오염되거나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들어내는 자들의 범죄일뿐 원죄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죄가 없더라도 있는 죄가 씻김을 받지 않고서는 순결무구한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으므로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르자크(연옥)’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씻김이란 변태하는 과정이고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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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세상의 많은 종교는 '영혼불멸설'(靈魂不滅說, immortality of the soul)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육신과 영혼은 별개이며,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천당이나 지옥에 가거나 다시 인간, 동물 등으로 환생한다는 사상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야훼(여호와)가 불멸하는 영을 인간에게 불어넣었다고 하며, 도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일컬어 신선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불멸의 영혼을 업식이라 일컬을 수 있으며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이 업식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으로 육도윤회한다고 합니다. 서양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영혼불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을 인간생활의 원칙으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자체가 삼부(三部)구조로 되어 있어서 감각적인 욕정의 원리인 탐욕혼이 복부에 자리 잡고 있고, 용기와 정기의 원리인 기혼(氣魂)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각의 원리인 지혼(知魂)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지혼은 불멸의 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자연철학적인 원리인 질료형상론(質料形相論, Hylemorphism)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사물의 구조원리가 그렇듯이 모든 생물의 구성원리는 원질(原質) 혹은 질료와 체형(體形) 혹은 형상으로 되어있어서, 여기의 모든 생명체의 체형 또는 형상이 혼 입니다. 따라서 식물에게는 생혼(生魂)이 있고, 동물에게는 각혼(覺魂)이 있으며 이 각혼은 생혼의 기능을 동시에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지혼(知魂)이 있는데, 지혼은 생혼, 각혼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기독교에서 영혼은 인간의 육신은 마치 사람이 육체에 옷을 입는 것 같이 영혼에게 입혀진 것이 옷이 육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는 불멸이며, 모든 인간의 영혼은 죽은후 야훼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여부에 따라서 대해서 심판을 받고 천국 혹은 지옥으로 나뉘어 가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육체는 영혼이 존재하는 동안 거하는 임시거처일 뿐이며, 인간의 모든 지식과 기억을 포함한 자아는 영혼에 존재하기 때문에 육신보다 영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각 개인의 사후세계를 위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 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나 사후세계만을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육체와 영혼으로 된 사람을 창조하셨다.” “영혼은 죽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이부(二部)구조적인 인간관은 창세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론에 근거를 두는 것이지만 이 교리가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반면, 동양의 유교에서는 천지만물이 음양, 오행, 기의 집합으로 생겨나고, 또한 그 기의 흩어짐으로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기의 모임으로 태어났다가 그 기의 흩어지는 현상이 바로 죽음이라고 해석했죠. 그래서,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혼백(魂魄) 역시 음양의 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일이 지나면 마침내 흩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간 기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유교에서는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번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손을 통해 대를 이어감으로써 그 허무함을 달래고 영생의 욕구를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즉, 후손으로 이어지는 것이 영혼이 이어지는 것이며, 대가 끊어지는 것을 영생이 단절된다고 생각했습다. 그래서 후손을 대단히 중요시 여긴 것 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연기설에 따라, 내세관이 뚜렷하였으며, 영혼을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합니다.
죽음은 곧 다른 삶의 시작으로 종말이 아니며 전생의 업보에 따라 금생(今生)에 태어나서 다시 업을 짓고 죽으면 그 업과(業果)에 따라 내세가 열리지만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어서, 자신의 지은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이 저장된 업식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사람, 천상으로 윤회한다고 하는 연기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업을 닦고 내세를 예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 본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윤회의 고리를 끊은 해탈을 하여야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대승불교적 관점으로 불교의 기본교리는 영혼을 부정하는 무아설(無我說)입니다.
무아설은 아트만을 불변의 실체로 인정하는 기존의 인도 사상과는 구별되는 불교 고유의 주장으로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아(我)는 부정하면서도 아트만의 상주설(常住說)과 함께 인도 사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윤회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시각에서 윤회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我)〕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범부의 그릇된 인식으로서 존재하는 나〔我)〕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아윤회(無我輪廻)’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대신 참 나 또는 무아라는 개념으로 업보에 따른 윤회를 설명합니다.
도교는 현세에 중심을 둔 종교로써 내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죽음이란 너무 허무한 것이기에 죽지 않는 장생불사(長生不死) 와 신선이 되는 성선(城仙)의 길을 택했습니다. 도교의 대표적인 서적인 ‘포박자’를 쓴 진나라의 갈홍은 거북과 학은 오래도록 산다고 하면서 어찌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겠냐고 갈파합니다.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초기에는 불로초나 불사약 같은 것을 추구했지만 후에는 방향을 바꾸어 정신적 수양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도교에서는 죽음에 대한 해석을 신체는 관에 들어가지만 영혼은 신선세계에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시해(尸解)입니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그 뿌리를 같이 하면서도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있다고 하는 원죄설을 주장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죄란 현세의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에 의하여 오염되거나 인간의 자유의지로 만들어내는 자들의 범죄일뿐 원죄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죄가 없더라도 있는 죄가 씻김을 받지 않고서는 순결무구한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으므로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르자크(연옥)’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씻김이란 변태하는 과정이고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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